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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하 선생은 한 번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수많은 학생과 단체를 도운 조용한 후원자였습니다. 그는 거창한 기부자가 아니라,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왔다"는 태도로 일관한 어른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수혜자들이 남긴 증언과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낸 ‘조용한 기부’의 진짜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1. 문형배 헌법재판관 – “이름 없는 장학금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김장하 선생의 수혜자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현직 헌법재판관 문형배입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장학금이 지급되었다고 합니다. 이 장학금은 수혜자에게 누구의 도움인지 알리지 않는 익명 후원이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그는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 등장하여 그 장학금이 김장하 선생의 후원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아버지는 아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어른이었다"라는 그의 말은, 김장하 선생이 남긴 인격적 영향이 단순한 금전 이상의 것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문형배 재판관은 이후 판사, 법학 교수, 헌법재판관으로서 국가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서게 되었고, 그가 내리는 정의의 판단은 김장하 선생의 조용한 ‘투자’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2. 무명의 학생들, 이름 없는 어른을 기억하다

    김장하 선생이 지급한 장학금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30여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는 교육청, 학교, 성당, 지역 신문사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의 정보를 얻었고, 직접 만난 적도 없는 학생들에게 등록금, 교복비, 참고서 값까지 지원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받은 학생 대부분이 장학금의 출처를 알지 못한 채 학업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한 수혜자는 KBS 다큐멘터리 제작진에게 이렇게 증언합니다.

    “어릴 땐 학교에서 알아서 도와주는 줄 알았어요. 어른이 되어서야 그게 어떤 분의 개인 후원이었고, 그분이 김장하라는 분이란 걸 알게 됐죠.”

    또 다른 수혜자는 1980년대 지방대학에 다니던 여학생이었는데, 기숙사비와 교통비가 없어 자퇴를 고민하던 중, 갑자기 “등록금이 면제됐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김장하 선생의 유지를 알게 되고 펑펑 울었다고 회상합니다.

    이처럼 그는 도움을 줬지만 절대 ‘도왔노라’고 말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수혜자들은 자신이 누구의 손을 거쳐 성장했는지 뒤늦게 깨닫고, 그 정신을 나름대로 실천하려 하고 있습니다.

    3. 부산일보 기자, 지역 성직자, 학자들 – 보이지 않는 손의 증언

    김장하 선생은 언론, 종교, 학문 분야에도 끊임없는 후원을 이어갔습니다. 대표적으로 부산일보 기자들의 자유로운 취재 활동을 후원했고, 성직자들에게는 생활비와 장학금을, 학문 공동체에는 운영 자금과 회의 장소, 출판 비용까지 지원했습니다.

    특히, 한 언론인은 해직 위기 속에서도 ‘한 명의 익명 독지가가 당신을 믿는다’는 말을 듣고 다시 일어섰다고 합니다. 그 익명의 후원자가 바로 김장하 선생이었음을 훗날 알게 된 것입니다.

    천주교 부산교구의 고위 성직자 중 일부는 “김장하 선생의 후원이 없었다면 지역 청년사목이나 복지사업은 지금처럼 확장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학문공동체 ‘경남학회’와 지역 시민단체들도 그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아왔으며, 어떤 경우는 단체 이름조차 묻지 않고 자금을 내주었다고 전해집니다.

    4. 그의 후원이 특별한 이유 – 조건도 이름도 없었다

    김장하 선생의 후원은 ‘익명’과 ‘무조건’이라는 두 가지 원칙으로 이뤄졌습니다. 후원 대상의 성적, 종교, 성별, 신념은 고려하지 않았고, 단지 “필요하다는 신호”만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는 특정 단체의 구성원이 아니었고, 활동을 직접 지시하거나 홍보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주변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저,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그리고 내 이름은 없어도 됩니다.”

    그의 철학은 당시 유행하던 기업 이미지 마케팅식 기부와도 철저히 선을 그었습니다. 광고 하나 없이, 보도자료 한 줄 없이 그는 수백 명을 도왔고, 수십 개 단체를 일으켰습니다.

    5. 김장하가 남긴 사회적 유산 – 다시 ‘어른’이 필요한 시대에

    김장하 선생이 남긴 유산은 단지 돈이 아닙니다.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삶으로 증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수혜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 “그 분은 존재 자체로 교육이었다.”
    • “나도 언젠가 그렇게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분.”
    •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어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오늘날, 보여주기식 기부와 스폰서십 중심의 후원 문화 속에서 김장하 선생이 남긴 조용한 발자국은 더욱 귀하게 다가옵니다. 진짜 어른이란 말없이 지켜보고, 필요할 때 조용히 손 내미는 사람 아닐까요?

    결론

    김장하 선생은 위인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했을 뿐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수백 명의 삶이 바뀌었고,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저변이 단단해졌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의 수혜자가 아니라,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차례입니다. 이름도 없이 사람을 키운 이 어른을, 오래도록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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